Journal [두리안] 건축의 이름, 불리지 않던 이름에서 불리는 이름으로 썰토리텔링 2026-04-28 Keywords 두리안 두리안에디터 썰토리텔링 일본고전 이름 나이 신분 관계 상황 이름의변화 삶의변화 시간의기록 익숙한이름 건물성장과변화 내가아는곳 특별히기억되는곳 기능형태시간 경험층위 건축완성 오래기억되는건축 일본 고전을 읽다 보면 한 사람이 여러 이름으로 살아간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다. 낯설게 느껴지지만, 당시 일본 사회에서는 이것이 매우 자연스러운 관습이었다. 이름은 고정된 정체성이 아니라, 나이와 신분, 관계와 상황에 따라 유동적으로 변하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에는 아명으로 불리고 성인이 되면 새 이름을 얻는다. 삶의 국면마다 이름이 차곡차곡 더해지고 겹치며, 이름은 단순한 호칭을 넘은 시간의 층위가 된다. 그래서 한 사람이 여러 이름으로 등장해도 결코 혼란스러운 일이 아니다. 이름의 변화는 곧 삶의 변화이며, 그 사람이 지나온 시간을 고스란히 드러내기 때문이다. 이처럼 한 사람을 온전히 이해하려면, 단일한 이름이 아니라 그가 삶 속에서 불려온 무수한 이름을 알아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의 건축은 어떻게 다를까? 대부분의 건축물이 한 번 부여된 단단한 이름을 오랫동안 유지하며 쉽게 바뀌지 않는다. 행정과 기능, 브랜드 기반의 이름은 관리와 효율이라는 면에서 편리하지만, 시간이 스며들 자리는 남기지 않는다. 건물이 용도를 바꾸고 누군가의 기억이 쌓여도, 이름은 같은 자리에 머무른다. 변화가 누적되어도, 이름만은 변하지 않는 것이다.그래서 우리는 종종 건물을 이름 대신 ‘어느 사거리 건물’, ‘카페 있는 곳’, ‘파란 간판 집’이라 부른다. 주소로 기억하는 것은 빠르고 정확하지만, 그곳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어떻게 쓰였는지는 드러나지 않는다. 이름이 있으나, 진정한 의미를 담아내지 못하는 상태다. 이런 현상은 작은 골목에서 더욱 자주 눈에 띈다. 한때 세탁소였던 건물은 카페가 들어서도 오랜 시간 ‘세탁소 건물’이라 불린다. 익숙함이 그 공간의 이름을 고착시키는 셈이다.우리 건축의 이름도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하나의 고정된 이름으로 머물지 않고, 시간이 흐르며 경험과 사건을 품어 스스로를 설명해가는 이름 말이다. 처음 건물이 준공될 때의 이름은 좌표처럼 단순하다. 지도 위의 한 점, 택배를 받기 위한 최소한의 표식일 뿐이다. 아직 경험되지 않은 이름은 건물의 바깥에 머물지만, 시간이 지나고 어떤 사건으로 기억이 쌓이면, 건물은 자연스럽게 다른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한다. 이 이름들은 설계자가 붙이지도, 행정이 부여하지도 않는다. 시간과 사람, 관계가 만들어내는 건물의 새로운 이름이다.집을 예로 들어 보면 더 쉽게 와닿는다. 그 안에는 나이, 관심사, 직업, 성장 같은 시간이 서서히 스며들고, 누군가의 삶이 머물며 쌓인 기억과 경험들이 공간에 깊이를 더한다. 공간은 그대로일지라도, 그 집을 부르는 이름은 자연스레 달라진다. 건축도 마찬가지다. 작은 수선이나 공간의 쓰임 변화가 먼저 이름에 반영되고, 이름이 바뀌면 건물도 그에 맞춰 자연스레 성장하고 변화한다.한 개의 이름으로만 정의되지 않는 건물, 그 위에 여러 이름이 켜켜이 쌓여 그만의 정체성과 성격을 만들어낸다. 이렇게 완성된 공간은 단순한 좌표가 아니라, ‘내가 아는 곳’, ‘특별히 기억되는 곳’으로 거듭난다. 그 이름은 형태나 기능을 넘어, 시간과 경험이 쌓여 만들어진 무게 있는 층위다. 바로 그 이름이 건축을 완성하는 핵심이기도 하다. 오래 기억되는 건축은 어쩌면 그 이름이 어떻게 불리느냐에 달려 있을지도 모른다. [이미지 출처: House KN by Kochi Architect's Studio]에디터 두리 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