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urnal [두리안] 이를 닮은 건축, 무엇을 기억에 남길 것인가 썰토리텔링 2026-04-20 Keywords 두리안 두리안에디터 썰토리텔링 꿈 사라짐 치아 유치 영구치 시간과건축의유사성 교체 감각적경험 사라지는건축 낡음과교체 효율과합리성 감각과기억의소멸 철거 보존과제거 기존구조와재료의재활용 과거흔적 새로움의조화 감탄과공감 변화와적응 소중한기억 지속가능한건축 아무런 통증 없이 오른쪽 이가 한꺼번에 빠져버렸다. 황당한 채 한 손에 빠진 이를 쥐고 치과로 달려가 의사를 찾다가 잠에서 깼다. 꿈이었지만 현실과 경계가 한동안 흐릿했다. 무의식적으로 볼을 만지고, 빠진 이를 쥐고 있던 손을 더듬으며 비로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음을 확인하고 안도했다. 무슨 꿈인지 궁금해서 인터넷을 찾아봤지만 속 시원한 설명은 없었고, 뭔가 좋지 않은 의미인 것 같았다. 그렇게 깨어난 새벽,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떠올라 종이를 꺼내 들었다.사라짐을 전제로 한 구성 인간은 평생 두 벌의 치아를 갖는다. 유치와 영구치. 같은 기능을 하지만 그 생애와 의미는 완전히 다르다. 유치는 흔들리고 빠지며 새로운 이에게 자리를 내준다. 영구치는 그 자리를 단단히 지키며 오랜 시간 함께한다. 가장 늦게 나는 사랑니조차 때로는 세심한 결정 아래 제거되기도 한다. 이 단순한 구조는 건축이 시간을 다루는 방식과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다. 우리는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보내며 살아갈까.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어떤 기억을 간직하고 어떤 기억을 잊어버릴까.교체되며 사라지는 기억어린 시절 머물던 집은 마치 유치처럼 잠깐 머물렀지만, 강렬한 기억으로 우리 마음속 깊이 자리한다. 빛이 스며들던 창밖 풍경, 맨발로 걷던 따뜻한 바닥, 문을 열고 닫을 때마다 울리던 익숙한 마찰음 같은 작은 감각들의 기억이 생생하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더 크고 편리하며 견고한 집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기억은 자연스럽게 새로운 것으로 채워진다. 시간이 흐르면서 생생하게 기억하던 과거의 장면들은 점차 흐려지고, 결국 몇 개의 단편으로만 남는다. 어린 시절 이가 빠지던 순간을 또렷이 기억하지 못하는 것처럼 우리의 기억도 공간과 함께 그렇게 서서히 사라진다.사라지는 건축, 남겨야 할 기억건축은 오랫동안 이 과정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왔다. 도시는 끊임없이 새로워지고 교체된다. 낡은 것은 새로운 것으로 자리를 내주며, 변화는 자연스럽게 일어난다. 이 과정은 효율적이고 합리적이다. 그러나 이 반복은 동시에 우리가 가진 공간에 고스란히 깃든 감각과 기억을 함께 지운다. 치아가 빠지거나 제거되는 일이 자연스러운 과정이듯, 우리는 공간의 소멸에도 점차 무뎌진다. 철거가 일상이 되면서 우리는 결국 기능만 남은 익명적인 도시 속에 살게 된다. 도시는 점점 비슷한 얼굴로 변해간다. 하지만 기능만으로 채워진 공간은 살아 있는 경험의 깊이를 담아내지 못한다.남김을 설계하는 태도건축은 이제 ‘무엇을 새로 지을 것인가’라는 질문에 더해, ‘어떻게 기억하고 남길 것인가’라는 중요한 물음을 품고 있다. 모든 것을 보존하는 것은 어렵지만, 일부를 남기고 일부를 덜어내며 기존 구조나 재료를 새로운 공간에 섬세하게 녹여내는 설계는 가능하다. 과거의 흔적을 고정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움과 어우러져 더 깊고 풍요로운 현재를 만드는 일이다. 이전의 흔적을 현재 공간 속에 겹쳐 넣는 일. 그렇게 해서 ‘어? 나 이거 알아!’ ‘나 이거 경험해 봤어!’ 같은 감탄이 자연스럽게 이어졌으면 한다.동시에 새롭게 탄생하는 건축물에도 영구치와 같은 태도를 가져보면 어떨까. 건축물이 단순히 교체를 전제로 한 대체물이 아니라, 시간이 흐르며 점점 깊은 의미를 더해가는 살아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변화 속에서 유연하게 적응하고, 사람들의 경험과 기억을 품어내는 공간이어야 한다. 우리는 이미 많은 것을 지워왔다. 이제는 무엇을 소중히 남길지 함께 고민하며, 기억이 쌓이는 건축을 함께 만들어갈 때이다. [이미지 출처: Elbphilharmonie. Hamburg, Germany]에디터 두리 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