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urnal 속도를 넘어 기억을 향한 걸음: 펜탁스17과 dkb의 건축 실험 Opinion 2026-04-07 Keywords 기억을향한걸음 펜탁스17 dkb의건축실험 홈페이지오픈 변화 필름카메라 감각 기록 신형필카 만들어지자마자사라지는 새롭게정의된 다시세운결과 세로사진촬영기능 가볍고직관적인사용성 버리는선택 다양한방식으로소비 기억되고공유되는매체 새로운기준 유연한공간 홈페이지를 오픈한지 어느덧 만 2년에 가까워진다. dkb는 작은 규모로 시작한 만큼, 처음부터 다른 길을 걸어보자는 생각을 해왔다. 빠르게 질주하는 메이저 브랜드들을 따라하기보다 천천히 걷는 쪽을 택했다. 속도가 아니라 방향을 선택한 것이다. 그 위에 어떤 변화를 더할 수 있을지 고민하던 중, 문득 한 가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바로 필름 카메라였다. 빠르게 지나가는 정보 대신, 느리지만 감각으로 오래 남는 기록을 하자는 다소 엉뚱하고도 새로운 제안이었다.그리고 신형 필름 카메라를 구입했다. 이 작은 실험에서 중고가 아닌 신형을 택한 이유는 단순했다. 과거를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시선으로 새롭게 만들어진 ‘필름’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익숙함을 반복하기보다 낯선 기준을 직접 경험해보고 싶은 마음에서였다.오랜 시간 브랜드 업무를 하며 쌓인 경험은 이러한 판단의 배경이 되었다. 제품과 브랜드를 런칭하려면 오랜 기간 동안 콘텐츠 준비가 필요하다. 이 과정은 정교하고 치밀하며 높은 완성도를 요구한다. 때로는 수개월, 길게는 1년에 가까운 시간이 소요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 이후의 흐름은 늘 비슷했다. 정성을 들여 만든 자료는 뉴스와 매체를 통해 비슷한 문장으로 재구성되고, 결국 유사한 형태로 소비된다. 그렇게 공들인 콘텐츠는 반복되는 구조 속에서 점차 희미해진다. 완성도와 관계없이 기억에 남지 않는 결과에 아쉬움이 컸다. dkb는 바로 그 지점, ‘만들어지자마자 사라지는’ 콘텐츠의 흐름에서 벗어나길 원했다.예상보다 빨리 도착한 택배는 설렘보다는 불안을 먼저 안겨주었다. 비에 젖어 심하게 찌그러진 박스 때문이었다. 다행히 내부는 무사했지만, 진짜 문제는 박스를 열어 펜탁스17을 꺼낸 순간 찾아왔다. 기대와는 달리 전통적인 금속 질감과 묵직한 세련미 대신 가벼운 외관이 나타나 솔직히 당황했다. 1회용 카메라를 떠올리게 하는 이 모습은, 복잡한 매뉴얼을 익혀야 하는 기존 카메라와 달리 두 장짜리 간단한 설명서가 ‘바로 사용하라’고 말하는 듯했다. 기존의 것과 비교해 모든 것이 부족하게 느껴졌다.하지만 개발 과정을 접하며 생각이 바뀌었다. 이 카메라는 과거의 재현물이 아니라, 완전히 새롭게 정의된 필름 카메라였다. 20년 넘게 공백이 있었던 만큼 기존의 것을 답습하지 않고, 오히려 해체해 다시 세운 결과였다. 무겁고 복잡한 수동 기능을 과감히 덜어내고, 스마트폰에 익숙한 사용자를 고려해 세로 사진 촬영 기능과 가볍고 직관적인 사용성을 지향했다. 과거 필름 카메라에 익숙한 이들에게는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이는 완성도를 낮춘 것이 아닌, 기준 자체를 바꾼 선택이었다. “우리는 과연 변화하고 있는가? 아니면 익숙함 속에 머무르고 있는가?”그 순간 스스로에게 물었다. 익숙한 기준에 머무르는 것이 안정적일 수 있으나, 어쩌면 그것은 과거의 경험에 기대어 현재를 재해석하는 것일 뿐인지 모른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변화란 새로운 것을 더하는 것이 아니라, 당연하게 여겨온 기준을 덜어내는 ‘버림’에서 시작된다는 깨달음이 찾아왔다. 무엇을 남길지보다 무엇을 버릴지를 결정하는 그 선택의 순간, 펜탁스17은 그 점을 아주 선명하게 보여주었다. 결국 진정한 변화란 ‘버리는 선택’에서 비롯된다는 진실을 새롭게 깨달았다.이 질문은 자연스레 dkb의 건축으로 마음을 돌리게 했다. 올해부터 조금씩 준비하고 있는 dkb 건물 역시 새로운 변화가 필요하다. 견고함과 지속성, 그동안 건축이 가장 중요하게 여겨온 가치들은 여전히 유효하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한지 다시 생각할 필요가 있다. 오늘날 공간은 그저 머무는 곳이 아니라, 경험되고 기록되며 다양한 방식으로 소비된다. 공간은 더 이상 고정된 대상이 아니라, 기억되고 공유되는 매체인 것이다.dkb의 건축도 새로운 기준을 세울 것이다. ‘오래 남는 것’에서 ‘다르게 기억되는 것’으로의 전환. 튼튼하고 지속되는 건축을 넘어, 새로운 감각과 창의성으로 경험되는 유연한 공간으로 나아가야 한다. 익숙한 가로형 건축에 머무르지 않고, 마치 세로 사진에 어울리는 새로운 감각을 불러일으키는 공간으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것을 채우는 게 아니라, 오래된 기준을 다시 바라보고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다. [이미지 출처: Inside the New Pentax 17 Film Camera by Evan Dorsky]에디터 이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