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urnal 사라진 풍경, 낯선 건축은 왜 기억되지 못했을까 Opinion 2026-03-20 Keywords 사라진풍경 낯선건축 어린시절기억 중국식주택 중식당풍경 이국적인느낌 차이나타운 기억되지못한공간 형태와경험의차이 낯섦과거리감 반복되지않는경험 경험으로전해지는건축 열린공간 초대의장 반복가능한경험 기억의확장 시간속살아남는건축 경험가능한건축 오래된 한 집을 찾아 떠나는 꿈을 꾸었다.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었지만, 누군가에게는 분명 특별한 의미가 있는 장소였다. 그 집과 인연이 닿은 사람의 차를 타고 길을 나섰으나 여정은 순탄치 않았다. 과거의 기억을 따라 길을 가다 보니 우리는 몇 번이나 길을 잘못 들었고, 마치 그 집이 스스로를 쉽게 드러내지 않으려 애쓰는 듯한 느낌이었다. 한참을 헤맨 끝에야 건물 외벽에 붙은 작고 희미한 간판을 발견했고, 그제야 비로소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찾아 헤맨 그 집의 외관은 평범하기 그지없었다. 그래서인지 일부러 찾아왔다는 사실이 오히려 낯설게 느껴졌다. 그러나 문을 열고 들어서자 완전히 다른 세계가 펼쳐졌다. 내부는 어둠에 푹 잠겨 빛을 거의 받아들이지 않았고, 시간마저 느리게 멈춘 듯한 정적이 감돌았다. 회색빛으로 가득한 공간은 답답한 느낌을 주었고, 바닥은 지면보다 낮게 조성되어 몸에 낯설고 이질적인 감각을 일깨웠다. 여러 개의 작은 방들이 가장자리를 따라 서로를 감싸 안았으며, 우리는 그중 가장 앞쪽에 위치한 방으로 안내를 받았다.그 방은 익숙한 질서를 따르지 않고 있었다. 일반적인 테이블과 의자가 놓인 구조와는 달랐다. 벽을 깎아낸 듯 ㄷ자 형태로 이어진 콘크리트 좌석이 공간을 감싸고 있었고, 그 앞에는 바닥과 맞닿아 낮게 놓인 테이블이 자리했다. 전체적으로 ‘앉는’ 것보다 공간에 ‘걸터앉는’ 느낌에 가까웠다. 그런데도 이상하게도 그 장면이 전혀 낯설지 않았다. 오히려 오래전 스쳐 지나간 기억을 끄집어냈다. 어린 시절 도시 어딘가에서 마주했던 중국식 주택과 중식당 풍경. 많지는 않았지만 분명 존재했고, 그때의 나는 그것을 이해하기보다 ‘이국적인 것’으로 받아들였던 기억이 있다. 지금은 그런 풍경을 좀처럼 보기 어렵다. 특별히 찾아가지 않는 이상, 예를 들어 차이나타운 같은 특정 지역이 아니면 마주치기 힘든 장면이 되었다. 한때는 일상에 스며들어 있었던 공간이 이제는 일부러 찾아가야만 만날 수 있는 장소가 된 것이다.그렇다면, 존재했던 것은 왜 사라진 걸까?건축은 다른 문화에 비해 느리게 움직인다. 한 번 지어지면 쉽게 바뀌지 않고, 제자리에 오래 머무른다. 그래서 더 오래 남을 것만 같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어떤 건축은 기억 속에 남지 못한 채 조용히 사라진다. 형태는 남아 있어도 우리가 경험하지 못하면 일상의 풍경에서 사라져버린다. 어쩌면 문제는 ‘낯섦’ 그 자체가 아니라, 그 낯섦을 어떻게 다루는가에 있는지도 모른다. 그 공간들은 분명 존재했지만 충분히 열려 있지 않았다. 익숙하지 않은 구조와 방식은 사람들에게 호기심보다 거리감을 먼저 안겨주었고, 경험이 반복되지 않아 결국 낯섦은 거리감으로 남았다. 한 번 스쳐 지나간 기억은 이어지지 못했고, 경험으로 쌓이지 않았다. 건축은 형태로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경험으로 전해진다. 누군가 머물렀던 기억, 그 공간에서 느꼈던 감각, 그리고 그것을 다시 마주해 공감할 때, 건축은 비로소 완성되고 확장되는 것이다.만약 그 공간이 조금 더 열려 있었다면 어땠을까?낯선 방식이지만 누구나 편안히 들어와 경험할 수 있는 ‘초대의 장’이 되었다면, 그 풍경은 지금과는 또 다른 모습으로 남아 있었을지도 모른다. 작고 이질적인 건축일수록 더 많은 경험을 필요로 하니까. 우리가 찾아갔던 그 집 역시 인상적이었지만, 쉽게 반복되기 어려운 공간이었다. 찾아가기 어렵고, 내부는 닫혀 있었으며, 경험도 제한적이었다. 그 자체로는 충분히 매력적이었지만, 이어지기에는 부족한 조건들이었다.작은 공간이라도 누군가에게 열려 있고, 낯선 감각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장으로 존재한다면, 그 건축은 단순한 형태를 넘어선다. 그것은 기억이 되고, 기억은 다시 또 다른 경험을 만든다. 그렇게 건축은 시간 속에서 비로소 살아남는다. 결국 오래 남는 것은 형태가 아니라 경험이며, 살아남는 건축은 언제나 경험 가능한 건축이다. [이미지 출처: 서도호 작가 '집 속의 집 속의 집 속의 집 속의 집’]에디터 이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