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urnal [dkb Archive 03] 제주가 배경이 된 기억과 생각 Opinion 2026-07-01 Keywords dkbArchive 오렌지색 제주 관찰자의눈 질문 깊은생각 오렌지색우주인 오렌지빛풍경 도시색 키컬러 설렘 정체성고민 장소가생각변화 여행자와관찰자 색의차별성 형태의중요성 기억과형태 조용한힘 삶과카페담은집 건축배우기 계획실현 글쓰기 따뜻한온기 장소와사람관계 숨겨진땅 삶의변화 존재방식변화 내면의발견 이상화에디터 오렌지색 우주인이 되다어떤 사람은 더 나은 환경을 찾아 떠나고, 또 어떤 사람은 새로운 기회를 찾아 움직인다.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깨닫게 된다. 특정한 장소가 우리의 선택과 생각, 그리고 삶의 방향을 바꾸었다는 사실을. 제주는 내게 그런 곳이다. 처음 제주는 그저 여행지였다. 바다를 보고, 사진을 찍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유명한 공간을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러나 제주를 반복해서 찾으면서 시선이 달라졌다. 이제 나는 여행자가 아니라 관찰자의 눈으로 제주의 풍경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 순간부터 풍경보다 질문이 먼저 눈에 들어왔고, 생각도 깊어졌다.문득 상상해 보았다. 만약 오렌지색 우주인이 제주에 도착한다면 어떤 기분일까. 온 세상이 오렌지빛으로 물든 풍경을 보고 얼마나 신기해할까. 세상에 오렌지색 과일은 많지만, 도시 전체가 하나의 색으로 물든 곳은 드물다. 이번 제주에서 유난히 오렌지색이 눈에 들어온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사실 내게 오렌지색은 특별한 의미다. dkb house의 키 컬러가 바로 오렌지색이기 때문이다. 홈페이지부터 명함까지, 나는 브랜드를 대표하는 색으로 오렌지 하나만 꾸준히 사용해왔다. 원래는 세 가지 컬러를 함께 쓸 계획이었지만, 브랜드 인지도를 위해 한 가지 색에 집중했다.그런데 제주에서는 특별하다고 여긴 그 색이 가장 흔한 색이 되어 있었다. 어디를 가도 귤이 있었고, 간판에도, 포장재에도, 기념품에도 오렌지색이 넘쳤다. 처음엔 반가웠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 다른 감정이 밀려왔다. 내가 특별하다고 믿던 것이 이곳에서는 너무 평범했다. 마치 오렌지색 우주인이 처음의 설렘을 뒤로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다시 고민하게 되는 것처럼.장소가 생각을 바꾼다장소가 사람의 생각을 바꾼다. 어쩌면 내가 여행자가 아닌 관찰자의 시선으로 머물렀기에 가능했던 변화인지도 모른다. 제주 밖에서 오렌지색은 차별화된 색이었지만, 제주의 풍경 안에서는 그저 흔하고 평범한 모습이었다. 오히려 같은 색으로 자신만의 브랜드를 만들어가는 이들의 모습이 특별하게 느껴졌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색이 같다면 색만으로는 구분할 수 없다. 결국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형태다. 아무리 아름다운 색이라도 형태가 없다면 오래도록 기억되지 않는다.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는가가 먼저이고, 어떤 색으로 기억될지는 그 다음의 문제다. 결국 제주에서의 경험처럼, 장소는 우리 생각을 바꾸고 이전에는 미처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보게 한다.장소, 사람을 바꾸는 가장 조용한 힘10여 년 전, 한 부부의 블로그를 읽은 적이 있다. 서울 삼청동에서 작은 이탈리안 레스토랑을 운영하던 두 사람은 높은 임대료와 건강 문제, 그리고 오랫동안 함께했던 반려견 멜로디와의 이별을 계기로 서울을 떠났다. 그들은 겨울에도 따뜻한 제주를 선택했고, 살 집을 짓기 전까지 새로운 반려견 하이디와 함께 지낼 집을 구하며 차근차근 계획을 실현해 나갔다. 낯선 땅에서 직접 땅을 고르고, 건축을 배우고, 자신의 삶과 카페를 담은 집을 설계하는 과정은 쉽지 않았지만, 그들이 원하는 삶을 현실로 만들어 낸 모습은 오래도록 내 마음에 남았다.그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나 역시 마음속 깊이 품고 있던 건축에 대한 관심을 꺼내 볼 수 있었다. 건축 관련 책들을 읽기 시작했고, 조금씩 글쓰기를 시작했다. 지금의 dkb house 역시 그 작은 계기에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번 제주에서는 일부러 그곳을 찾지 않았다. 언젠가 나도 그들처럼 나만의 집을 완성하고 그 공간을 찾아가고 싶다는 마음 때문이었다. 그때의 만남이 더욱 깊은 의미로 다가올 것이라 믿는다. 하얀 목조주택과 언덕, 핑크뮬리, 그리고 하이디와 멜로디가 기억되는 그 공간이 따뜻한 온기로 가득하길 바란다.사람이 장소를 선택하는 걸까, 아니면 장소가 사람을 선택하는 걸까? 나는 이제 후자에 더 마음이 기운다. 처음에는 사람이 장소를 고른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그 장소가 사람을 시험하고, 맞아들이며, 결국 새로운 사람으로 변화시킨다. 제주에서 그들이 숨겨진 땅을 찾아 꿈꾸던 집을 짓고 삶을 만든 것처럼 말이다. 장소는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우리의 삶과 생각, 존재 방식까지 조용히 그러나 강하게 변화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다. 또한 우리 안에 숨겨진 것들을 끌어낸다.에디터 이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