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urnal 컨셉이 미쳐 돌아왔다: 디자인 안내자의 고민과 역산 Opinion 2026-03-28 Keywords 스티브에디터 컨셉 프로젝트 실패 견고한컨셉 7080 트렌드 창고카페 노르웨이외딴마을 인더스트리얼디자인 사용자취향 창고흔적 라이브공연 옥상 포도나무 힐링공간 사라진컨셉 아쉬움 개성 진정성 컨셉의본질 멋진 결과물이 나올 거라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확실히 실망스러웠던 프로젝트가 있어 소개하고자 한다. 실패하거나 계획과 달리 마무리된 작업은 보통 개인 폴더에 넣어 다시 들여다보지 않는 것이 디자이너들의 관례다. 이번 프로젝트는 다르다. 기록으로 남기고 싶어 글을 쓰게 되었으며, 그 이유는 컨셉 만큼이나 진지한 고민과 세심한 선택이 함께 이루어지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디자이너로서 나는 한 가지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 시간이 흘러도 사랑받고 지속되기 위해서는 견고한 컨셉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이다. 그래서 디자인 작업에서 언제나 가장 많은 열정을 ‘컨셉’에 쏟는다. 얼마 전 작은 카페의 컨셉 개발을 맡아 안내자로서 심혈을 기울였지만, 제안된 용역 범위와 이후 여러 결정들이 바뀌면서 결국 컨셉이 제대로 반영되지 못했다. 유행과 상관없다는 믿음 첫 질문은 꽤 오랫동안 나를 고민하게 만들었다. 시작은 ‘내가 이쪽 일을 잘 아는데~’라는 친근한 말투였지만, 그의 제안은 7080을 컨셉으로 작은 카페를 만든다는 이야기였다. 최근 7080 카페들이 문을 닫으며 갈 만한 곳이 줄어든 상황을 지적하며, 새로 생기면 그 문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 있을 거라고 했다. 과거 야시장에서 노래하던 각설이가 지금도 있는 것처럼, 어떤 문화는 트렌드와는 상관없는 독자적인 영역이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하지만 나는 점차 사라지는 방식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에 대해 의문이 들었고,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현재의 인기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7080’이라는 이름을 내세워 사업을 시작하는 것이 적절한지, 그리고 향수에만 기대는 접근이 장기적으로 의미 있는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 의심스러웠다. 시작에 대한 부담과 대안의 창고 카페 새로운 시작에 부담을 느낀 의뢰자는 기존에 운영 중인 카페를 인수하는 방법이 더 안전하다고 생각했다. 여러 곳을 둘러본 끝에 마음에 드는 카페를 발견했고, 인수도 진지하게 검토했다. 도시 외곽에 위치한 그 카페는 건물과 인테리어가 나쁘지 않았고, 꾸준히 손님도 찾아왔다. 별도의 인테리어 비용이 들지 않고, 기존 운영 방식을 익히기만 하면 큰 어려움 없이 이어갈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그러던 중 상가 내에 있는 카페에 눈길이 갔다. 상가 내 카페들은 인지도나 접근성, 주차, 공연 등 여러 제약이 있었지만, 공간을 새롭게 꾸미고 자신만의 취향을 담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결국 의뢰자가 찾은 대안은, 자신이 운영하는 유통 창고 일부를 활용하는 것이었다. 운영 중인 창고의 일부를 카페로 개조하면서, 창업의 부담과 비용을 줄일 수 있겠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다만, 창고가 외곽에 위치해 접근성이 떨어지는 점과 카페 운영과 창고 활용 두 가지를 어떻게 조화롭게 맞춰 시너지를 낼지 깊이 고민해야 했다. 끝내 사라진 컨셉 이곳은 젊은 세대가 7080 문화를 좋아하는 부모님을 데리고 와 생일파티를 함께하는 공간이다. 가족들은 저녁 외식을 마친 뒤, 미리 준비한 케이크와 커피를 즐기며 프라이빗한 시간을 보낸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젊은 세대와 부모 세대 모두에게 서서히 입소문이 퍼진다. 도심에서 떨어진 이 공간은 ‘노르웨이 외딴 마을’을 콘셉트로 디자인하였다. 카페라기보다 작은 공연장에 가까운 공간으로 기획했다. 창고와 연계해 인더스트리얼한 실버 컬러로 외관을 마감하고, 입구와 간판에는 둥근 할로겐 조명이 은은하게 빛난다. 작은 실내 공간은 뒷마당과 옥상을 연결하며 동선을 계획했고, 이를 통해 사용자의 취향을 반영한 다양한 볼거리를 만들었다.공연장을 연상시키는 골드 컬러의 문을 통과하면, 오른쪽에 웰컴 존이 손님을 맞이한다. 캐비닛 위에는 화려한 꽃병과 간단한 다과가 마련되어 있다. 왼쪽에는 웨이팅 존이 있어, 앞쪽 카운터에서 커피를 주문하고 기다리는 동안 손님들은 직접 LP를 꺼내 들으며 음악을 즐길 수 있다. 그 너머로는 가족 단위 손님을 위한 다인석 테이블이 배치되어 있다. 콘크리트 바닥은 이곳이 원래 창고였다는 흔적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벽과 천장은 노르웨이 해변의 저녁 7시 풍경을 모티브로 꾸며졌으며, 저녁 7시가 되면 라이브 공연이 시작된다. 공연은 별도의 무대 없이 우측 창가에서 진행되며, 외부에서도 관람이 가능하다. 별도의 무대를 만들지 않아, 손님 수에 따라 장소를 유동적으로 바꿔가며 공연할 수 있다. 포도나무가 옥상까지 커다랗게 자란 뒷마당은 훌륭한 힐링 공간이며, 이곳도 작은 야외 공연장으로 변신 가능하다.끝내 이 프로젝트는 컨셉이 사라진 채 막을 내렸다. 그리고 나의 컨셉은 끝없는 아쉬움으로 남았다. 이것은 안전하고 획일적인 결과물을 쫓지 않은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개성과 진정성이 결여된 것을 컨셉이라고 내놓을 수는 없다.에디터 스티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