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구조계산의 선구자: 건축가 김세연(1897-1975) 건축가 김세연(金世演, 1897-1975)은 한국 근대 건축 초창기를 이끈 중요한 인물이다. 그는 뛰어난 구조 계산 능력과 활발한 조직 활동으로 한국 건축계에 크게 기여했다. 해방 이후에는 조선건축기술단과 토건협회 등 여러 건축 단체를 주도하며 제도 정비와 건축계 발전을 위해 헌신했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절충식 서양식 주택인 경교장(京橋莊)이 있으며, 그는 화신백화점(1937), 신세계백화점(1930), 미도파백화점 등 주요 건축물의 구조 설계 및 계산에도 참여했다. 전통 건축과 서구 근대 건축의 조화를 추구한 절충 양식이 그의 건축 스타일의 특징이다. 다만, 그의 건축에 대한 세부 기록은 많이 남아 있지 않고, 남아 있는 작품 또한 일부만 복원되거나 변형된 상태로 전해진다는 점이 아쉽다. Keywords 건축 아카이브 Architectural Archive 건축가김세연 한국근대건축가 경성공업전문학교 조선총독부 한국인최초구조계산전문가 조선과건축 건축구조논문 화신백화점 신세계백화점 미도파백화점 조지야백화점 경성제대본관 경교장 죽첨장 최창학저택 절충식서양식주택 백범김구 박길룡건축사무소 김세연건축사무소 건축가 김세연, 구조 분야에서 독보적 존재감을 드러내다 경기도 광주 출신인 건축가 김세연(金世演, 1897-1975)은 한국 근대 건축 초기에 서구 신교육을 받은 '건축 2세대'의 일원이다. 1920년 경성고등공업학교의 전신인 경성공업전문학교 건축과를 졸업한 그는 1941년 퇴직할 때까지 20년간 조선총독부 건축조직에서 기수와 기사로 근무하며 실무를 익혔다. 이곳에서 경성공업전문학교 건축과 1년 선배이자 한국 최초 건축가인 박길룡과 함께 일했다. 건축가 박길룡이 설계 분야의 독보적인 인물이었다면, 건축가 김세연은 구조 분야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존재감을 보였다. 그는 당시 한국인이 접하기 어려웠던 일본과 미국 등지의 선진 철근 콘크리트 시공법 및 구조 이론 서적들을 독학으로 연구해 한국인 최초의 구조계산 전문가로 자리매김했다.이러한 깊이 있는 학술적 탐구는 1928년과 1930년 <조선과 건축>에 발표된 여러 논문을 통해 결실을 맺었다. 그중 ‘프래트 슬래브(평판 슬래브)에 대해서’는 조선인이 집필한 최초의 건축 구조 논문으로, 일본과 미국의 최신 기술을 깊이 있게 분석했다. 또한 프랑스와 미국 공학자들의 실험과 이론을 소개하고 독일 잡지의 글을 번역한 ‘나상근(螺狀筋: 나선형 철근)을 갖는 철근 혼응토(混凝土, 콘크리트) 원주 설계’와 ‘곡축(曲軸)을 갖는 철근콘크리트 구재(構材)의 응력’ 등은 그의 탁월한 구조 공학적 이해와 학술적 역량을 보여주는 수준 높은 연구들이다. 건축가 김세연의 뛰어난 구조 계산 능력은 당시 조선 사회의 주요 건축물들을 탄생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는 화신백화점, 신세계백화점(당시 미쓰코시백화점), 미도파백화점뿐만 아니라 조지야백화점(현 롯데영플라자), 경성제대 본관(현 예술가의 집) 등 당대 주요 건축물들의 구조 설계 및 계산에 깊이 관여했다.1931년에 완공된 경성제대 본관은 한국인 최초 건축가 박길룡이 설계했으며, 건축가 김세연이 구조 설계와 계산에 깊이 관여하며 건물의 안정성과 예술성을 모두 높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철근 콘크리트 구조에 벽돌로 외벽을 마감한 이 3층 건물은 서울대학교 본관과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건물로 사용되다가, 현재는 예술가의 집으로 활용되고 있다. [예술가의 집] 1937년, 건축가 김세연은 당시 서울 5대 백화점 중 하나인 조지야(丁子屋) 백화점 확장 공사의 구조 계산을 담당했다. 이 건물은 한국인 건축가의 기술력이 담긴 중요한 유산으로, 현재는 롯데영플라자로 쓰인다. [부산근대역사관] 절충식 서양식 주택, 경교장을 설계하다건축가 김세연의 건축 철학과 뛰어난 안목은 그가 직접 설계한 작품들에서도 잘 드러난다. 동덕여자고등학교의 교사 일부와 강당, 그리고 특히 그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최창학 저택인 경교장(京橋莊, 1938) 등이 대표적이다. 경교장의 원래 이름은 죽첨장(竹添莊)으로, '광산왕' 최창학의 의뢰를 받아 1938년 건축가 김세연이 조선총독부에 재직 중 부업으로 설계한 절충식 서양식 주택이다.경교장은 연면적 945㎡의 지하 1층부터 지상 2층 건물로, 전체적으로 안정된 비례와 아치창을 이용한 단아한 외관이 특징이다. 전면은 아름다운 분할 비례를 갖춘 3베이(Bay) 형식으로, 1층 양쪽 베이에는 원형으로 돌출된 창이 있으며, 서쪽 베이에는 양쪽으로 세로로 긴 창을 추가로 배치하여 비대칭적이면서도 조화로운 입면을 완성했다. 가운데 베이 1층 전면에는 포치(Porch)가 설치되었고, 2층에는 세로로 긴 아치창 5개가 연속적으로 이어져 붙임기둥(Pilaster)으로 섬세하게 분할했다. 내부는 샹들리에가 있는 응접실, 당구실, 전용 이발실 등 냉난방 시설까지 갖춘 당대 최고 수준의 호화로운 대저택이었다. 건축가 김세연은 이처럼 서구 근대 건축의 양식을 수용하면서도 한국적 환경과 조화를 이루는 절충 양식적 접근을 자신의 건축 스타일에 담아냈다.경교장(京橋莊, 1938)은 조선총독부 재직 중이던 건축가 김세연이 '광산왕' 최창학의 의뢰로 설계한 절충식 서양식 주택으로 최창학은 이 건물을 개인 주거 목적이 아닌 손님 접대 용도로 활용하였다. 그는 안정된 비례와 아치창이 돋보이는 단아한 외관을 통해 서구 근대 건축 양식을 한국적 환경에 조화시켰다. [경교장 서울연구원] 경교장의 건축적 유산건축가 김세연이 남긴 유산은 비단 건축물의 가치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그의 대표작인 경교장은 7년 뒤 해방을 맞아 임시정부 주석 백범 김구 선생이 귀국하여 거처이자 집무실로 사용되면서, 경교장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게 되었다. 경교장은 김구 선생의 신탁통치 반대운동의 주무대이자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마지막 청사로서 한국 현대사의 중요한 전환점을 함께 한 역사적 장소가 되었다. 김구 선생 서거 후에는 중화민국대사관저, 월남대사관 등으로 사용되다가 1967년 삼성그룹에 인수되어 강북삼성병원 본관으로 사용되는 등 파란만장한 역사를 겪었다. 병원 증축 과정에서 철거 위기에 처하기도 했지만, 시민들의 끈질긴 보존 요구에 힘입어 서울시 유형문화재(2001년)와 국가 사적(2005년)으로 지정되었다. 2010년에 본격적인 복원 작업을 거쳐 2013년에는 서울역사박물관의 일부이자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역사를 전시하는 공간으로 재개방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강북삼성병원 내에 위치한 경교장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마지막 청사였다. 광복 후 백범 김구 선생이 집무실과 숙소로 사용했으며, 1949년 6월 26일 김구 선생이 안두희에게 저격당한 비극적인 역사적 장소이기도 하다. [경교장 국가보훈부] 고뇌와 책임감을 담다1941년 총독부를 퇴사한 건축가 김세연은 독립적인 행보를 이어간다. 그러던 1943년, 건축 인생의 파트너였던 건축가 박길룡이 뇌일혈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자 '박길룡건축사무소'의 경영을 인계받아 계속 운영했다. 광복 이후의 혼란과 한국 전쟁이라는 비극적인 상황 속에서도 건축가 김세연은 건축가로서의 책임을 다하며 한국 건축계를 재건하는 데 헌신했다. 그는 원로 건축가이자 행정가로서 다양한 활동을 펼쳤고 여러 건축 단체를 창립하는 데 주역이 되었다. 1945년부터 1954년까지 조선건축기술단(대한건축학회 전신), 조선건축기술협회, 대한건축기술협회, 대한건축학회의 단장과 회장을 역임했으며, 조선건축사협회 고문과 조선토건협회 초대 회장도 지냈다. 이들 단체는 오늘날 주요 건축 단체인 대한건축학회, 대한건축사협회, 대한건설협회의 전신들로, 그의 리더십은 새로운 시대의 건축 질서를 세우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1948년 '김세연건축사무소'를 개소하는 등 해방 이후에도 그는 풍문여자고등학교(현 서울공예박물관), 동성상업학교(현 동성고등학교) 강당, 옛 보성중학교 강당, 대한극장, 중앙청 제2별관, 옛 국학대학 등 여러 교육 및 문화 시설을 설계하며 구조적 전문성과 디자인 능력을 꾸준히 이어갔다.1937년 종로의 옛 안동별궁 터에 세워진 풍문여자고등학교는 건축가 김세연이 설계한 대표적인 교육시설이다. 구조 전문가인 김세연은 뛰어난 기술력과 최신 건축 기법을 적용하여 기능성과 심미성을 모두 갖춘 학교 건물을 완성했다. 같은 터에서 70여 년간 학생들의 배움터였던 풍문여자고등학교의 기존 건물 5개 동은 리모델링을 거쳐 2021년 공예허브인 서울공예박물관으로 새롭게 탄생했다. [서울공예박물관]건축가 김세연은 일제강점기에서 해방과 한국전쟁을 거치는 혼란한 시대 속에서 한국 근대 건축의 기반을 세운 선구자이다. 건축가 김세연의 삶은 한국 근대 건축의 다양한 면모를 보여준다. 그는 구조 전문가로서 치밀한 계산으로 건축을 지탱했고, 건축가로서 서구 양식을 한국적 맥락에 조화시켰으며, 행정가로서 건축계의 제도적 기틀을 마련했다. [참고 자료] 서울시 내 손안에 서울, 아카이브경성의 건축가들 (김소연, 루아크, 2017)김세연과 그의 건축활동에 관한 소고 (김정동, 2007)한국근대건축사연구 (윤일주, 기문당, 1988)김세연, 경교장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에디터 스티브